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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사랑, 호주의 국가장애보험제도를 소개합니다-⓶
    작성일
    2021-03-25 18:19

    내 사랑, 호주의 국가장애보험제도를 소개합니다-⓶

    나의 현재는 누군가의 오래된 미래다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1-03-25 12:27:15
    내 사랑, 호주 국가보험장애제도를 소개합니다. ⓒ이루나 에이블포토로 보기 내 사랑, 호주 국가보험장애제도를 소개합니다. ⓒ이루나
    코디네이터와 케어러와의 첫 만남을 플랜 미팅(Plan Meeting)이라고 부른다. 플랜 미팅의 주 목적은 당사자의 장애의 유형과 정도에 맞게, 처한 상황과 환경을 전반적으로 고려해서 개별적으로 맞춤화된 목표를 설정, 목표 도달을 위한 도움과 지원의 방법과 횟수를 수립, 이를 실천하기 위해 국가장애 보험제도(NDIS, National Disability Insurance Scheme)에서 일년간 필요한 지원 금액을 산정하기 위한 협의 시간이다. 덧붙이면, 매년 호주의 국가장애 보험에서 장애 관련 각종 치료사들의 시간당 권장되는 치료비를 제시하고 이 기준에 맞게 연간 펀드 비용을 산출해낸다.

    이해하기 쉽게 풀자면, 특별한 욕구를 지닌 장애아동이 학교에서 IEP(Individualized Education Plan, 특수교육 대상자에게 맞추어 개별적으로 작성되는 교육 목표)를 작성하듯, 국가장애보험의 코디네이터와 함께 국가차원의 IEP를 작성하는 일이라고 보면 된다.

    이 과정에서 코디네이터는 케어러(Carer)가 제출한 전문가들의 소견서, 케어러가 준비한 Carer’s Statement(양육에서의 어려운 점을 기록한 글) 등을 참고로 단기(일년) 목표와 중기 목표를 세우고, 구체적으로 필요한 각종 치료와 지원 서비스 등을 케어러와 협의한다. 보통 두 시간 정도 소요되는 플랜미팅에서 협의된 내용을 기반으로 펀드 팀에서 최종적으로 일년 간 지원되는 펀드의 양을 책정한다.

    이때 전문가 소견서는 소아과 전문의, 소아 정신과 의사, 상담사, 감각 통합사, 언어 재활사, 교사 등 아동의 성장과 발달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포괄하는 개념이고, 몇 명으로부터 소견서를 받을 것인가와 Carer’s Statement의 제출 여부 등은 모두 케어러의 선택 사항이다.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들어줘. 내가 한국의 문화와 장애 관련 복지시스템이 어떤지 잘 몰라서 하는 말인데, 호주 플랜미팅에서 정부 관료들의 권위에 절대로 위축될 필요가 없어. 벤은 이 제도를 이용할 자격이 있는 아이고, 너는 자식을 위해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거야.

    그들의 월급과 벤에게 제공되는 펀드도 결국은 정부 세금에서 나왔고, 영주권자인 너희 가정도 호주에 세금을 많이 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 그리고 코디네이터들의 장애에 대한 인식,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존중, 장애 감수성 같은 자질을 끌어 올리는 책임은 장애 당사자나 부모인 우리에게도 있는 거야. 만약 코디네이터의 자질이 의심스럽다면 넌 언제든지 플랜 미팅을 종료하고 새로운 코디네이터와 일정을 다시 잡을 권리가 있어.”


    아들 벤이 NDIS에 등록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 분야 선배인 엘리가 깨알같은 조언들을 아끼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호주의 NDIS는 장애 당사자나 가족들이 정부 기관이나 관료들과의 관계에서 처하기 쉬운 “을”의 처지, 즉 권력의 불균형으로 인해 야기될 불합리함을 완화할 장치들을 여러 개 준비해 뒀다.

    가령 예를 들어 보자면 이렇다. 만약 플랜미팅에서 코디네이터가 불만족스럽다면 플랜미팅을 취소하고, NDIS에 새로운 코디네이터 재배치를 요청할 수 있다. 또한 장애 당사자나 케어러가 원한다면, 제3자를 플랜 미팅에 참석시켜 당사자와 가족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하고 대변하게 할 수가 있다. 그래서 처음 플랜 미팅에 참여하는 초보들은 주변의 경험 있는 지인이나 신뢰할 수 있는 가족 등을 동반해서 참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책정된 일년치 펀드가 만족스럽지 않다면 NDIS 측에 ‘재검토’를 요청할 수도 있고, 그 후에도 만족스럽지 않다면 국가에서 정한 제3의 기관으로 보내 당사자가 만족할 만한 금액이 지불되던지 납득할 만한 합당한 설명이 제시되어야 한다.

    “미안한데, 여기서 플랜 미팅을 종료하고 다음에 날짜를 다시 잡고 싶어요.”

    처음 만난 코디네이터 제인은 경험도 부족해 보이고, 케어러의 입장에 대한 공감 능력이 낮아 보이고, 준비되지 않은 자세로 플랜미팅에 참여한 듯한 인상을 받았다. 나에게는 너무 절실하고 중요한 순간이 그에게는 단지 ‘또 하나의 플랜 미팅’ 쯤으로 보였다.

    그래서 플랜미팅을 중지시켰다. 벤의 엄마로 살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강단 있는 사람이 되었다. 호불호가 명확하고, 감각이 다르고, 새로운 사람과 환경과 일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리고, 잘 알지 못하는 사람 앞에서 본인의 의사를 말하는 일이 쉽지 않은 벤과 살면서 여러 번 시행착오를 하면서 배웠다. 더 큰 문제는 내가 타인의 눈치를 보고 상대의 기분을 맞추려고 할수록 벤의 신뢰를 잃기 쉬웠다.

    싫으면 싫다고, 불쾌하면 불쾌하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좋은 것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고, 정직하게 말해야 벤을 보호하고 위기로 몰아넣는 실수를 덜 하게 된다는 것을 배웠다. 가령, 내가 의사나 간호사에게 체면 차리고 눈치 보다가 타이밍을 잃은 순간, 벤이 극도로 두려워하는 주사를 충분한 설명이나 마음의 준비 없이 찌르는 일이 있고 나서, 그 후로는 병원 소리만 들어도 “싫어! 끔찍해!” 강력히 ‘저항하는 언어와 몸짓들’을 통해 각인된 교훈이다.

    더 중요하게는 장애월드에 들어와 보니 나의 경험은 단지 나만의 것이 아니라 모두의 보편적 경험이 되곤 했다. 그러니까, 내가 현재 선 자리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수많은 장애 당사자나 가족들이 오랫동안 투쟁하며 꿈꿔 온 오래된 미래이고, 결국 그들이 쌓아 올린 유산 위에서 내가 조금은 수월하게 시작하고 있다는 것, 그러니 나 또한 뒤에 걸어올 누군가를 염두에 두고 결정하고 행동을 해야 할 책무가 있는 것이다.

    NDIS에 불만을 접수한 후 새로 배정된 코디네이터가 미쉘이었고, 상당히 만족스런 코디네이터였다.

    나는 미쉘에게 다음과 같은 지원을 요청했다.

    벤을 이해하고 지원하기 위해 자폐성 장애를 더 잘 알고 싶으니 각종 부모 교육이나 자폐성 장애 관련한 강연이나 관련된 책들을 구매하는데 필요한 지원.
    완전통합 교육을 받는 벤에게 일반 교사의 통합교육에 대한 역량과 자질은 치명적으로 중요하니, 교사 교육을 위해 벤이 만나고 있는 상담사나 감각통합사를 학교로 파견하기 위해 필요한 지원.
    물 공포증이 있는 벤에게 감각 통합사와 함께 진행하는 수영 프로그램을 위한 지원.
    벤이 좋아하는 흥미 위주(Interest-centred)의 그룹 사회성 프로그램에 참여할 지원.
    개별 상담사, 감각통합사, 언어 재활사 지원.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감정조절/감각조절/실행력 향상을 위해 필요한 다양한 보조 도구들을 구매하는데 필요한 지원.

    수험생처럼 공부해서 빼곡하게 정리해 간 항목들을 주의 깊게 듣던 미쉘은 대답했다.

    “말씀해 주신 내용들은 벤에게 꼭 필요하고 적절한 지원들이네요. 기록해서 펀드 책정 시에 참고하도록 할게요. 제 가족 중에도 자폐인이 있어서 부모들의 일상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어요.”

    어머나, 내가 그 행운의 주인공인가? 엘리 말에 이런 경우를 잭팟 터뜨렸다고 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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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니스트 이루나 (bom022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