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아동과 피아노교사의 교학상장
"스승이 가르치고 제자가 배우면서 서로를 진보시켜준다"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1-02-22 11:53:02
13년 전 24살, 대학을 졸업 후 한 시골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왕복 80분의 거리를 운전하여 가는 곳이었지만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곳이었고 열정 가득한 졸업생이었기에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설렘을 가지고 학교에 출근한 첫날 교육현장은 설렘을 느끼게 해주는 일보다 낯설음과 예상치 못한 상황들로 가득했다.
설렘이 낯설음으로
"선생님! 아카시아 꽃 따드릴까요? 씹어 먹으면 달디 달아요."
"어? 꽃을 따먹는구나. 선생님은 괜찮아." ^^;;
꽃을 따먹는 이야기는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에 있었던 이야기인줄로만 알았는데,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나무를 타고 올라가 꽃의 단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마치 50년전 흑백 TV속에 와있는 듯 한 느낌이었다.
아이들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예쁘기도 했지만 낯설기도 했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큰 낯설음을 줬던 것은 장애아동 두명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발달장애아동1명, 인공와우를 끼고 있는 청각장애아동1명.
시골 학교에 피아노 교사로 왔는데 장애아동을 가르쳐야 함에 황망한 마음을 감출 도리가 없었다.
다른 장애에 대해 무지했던 나는 장애 아이들이 오면 피아노를 어떻게 알려줘야 할지 막막하고 속이 답답했다. 그렇다고 억지로 떠먹인다고 될 일도 아니었다. 사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느리고 시간이 오래 걸리니 그냥 '시간이나 때우자' 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하고 단념해버리는 부끄러운 교사가 되고 싶진 않았다.
말랑말랑해진 마음
할아버지랑 살고 있는 발달장애아이의 나이는 12살이었지만 1학년 아이와 함께 수업을 받았다. 그 아이의 큰 강점은 음악을 매우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동요를 굉장히 좋아했던 아이는 아무건반이나 두들기며 노래를 불렀다. 아이가 피아노를 치고 나면 건반에 침이 흥건했다. 아이가 점점 싫어지는 마음이 커져갔다.
그때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장애아동 피아노 교육과 관련된 서적이나 영상을 찾기도 어려웠다. 주변지인들이 죄다 음악만 공부하는 사람들이어서 누구에게도 장애아동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피아노를 가르치기보다 아이 자체를 먼저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의 특성과 패턴을 알게 되었다.
"선생니~~임! 근지루와요 ." (간지러워요)
어디서 배웠는지 등이 간지러우면 피아노 모서리에 등을 연신 긁어댔다.
"선생니~~임! 시끄루와요. (시끄러워요)
방음 칸막이가 없던 피아노교실의 피아노 소리가 동시에 흘러나오면 양쪽 귀를 막고 서성였다.
"하네(할아버지)한테“~~
피아노를 치기 싫어할 땐 울면서 꼭 할아버지를 찾았다.
아이의 이런 행동은 너무 귀여웠다.
줄줄 흘러내리는 아이의 침이 신경 쓰이기보다 붙여놓은 것 마냥 길고 가느다란 속눈썹이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가짜 주사기를 보면 겁을 내며 눈물을 흘리던 아이의 순수함이 그렇게 맑고 천진난만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아이와 함께 하며 마음은 말랑말랑해져갔다. 아이에 대한 마음이 바뀌니 피아노를 더 잘 가르쳐 주고 싶은 열의가 생겼다.
시골학교는 한 학기에 한 번씩 부모님을 모셔놓고 발표회를 한다. 이 아이가 단 한곡이라도 완성시켜 연주하도록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모차르트의 <작은별> 멜로디를 가르쳤다.
음악이 준 특별한 행복
도-도-솔-솔-라-라-솔--
파-파-미-미-레-레-도--
아이는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검지손가락만으로 건반을 연신 눌러댔다. 가르친 적이 없는 노래까지 흥얼거리면서.
연주가 끝난 후 학부모들의 경탄하는 소리와 뜨거운 박수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렇게 행복해하는 아이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 멜로디를 연주하기 위해 2개월을 노력했다. 느리고 틀리고 떼 부리는 과정들이 있었지만, 아이는 결국 해냈다.
연주곡의 수준과 연주 방법이 어떠하든, 누군가 앞에서 연주를 하고 박수와 환호를 받는 것은 이 아이에게는 특별하고도 행복한 경험 이었을 것이다.
아이의 경험은 교사인 나에게도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13년 전 그 아이의 행복한 표정은 지금껏 내가 장애아동음악교육을 하도록 만들어 준 첫 단추이자 원동력이 되었다.
나를 성장하게 해준 제자들
중국 오경(五經)의 하나인 《예기(禮記)의〈학기(學記)〉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교학상장(敎學相長). '스승이 가르치고 제자가 배우면서 서로를 진보시켜준다' 는 말이다. 난 이 말에 깊이 공감한다.
장애 아동과의 만남은 교육가로서 지금의 나를 성장하게 해줬다. 우선 음악을 어떤 방식으로 접근 할 것인지에 대한 풍부한 음악적 이론과 노하우를 갖게 해 주었다. 분명 그들의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색다른 접근과 시각은 매너리즘(신선미와 독창성을 잃는 일)에 빠지지 않게 해 주었다.
장애아동을 가르치는 일은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알게 해주었다. 마음을 열고 소통한다는 것이 어려운 부면도 있지만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고 단순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장애나 문제와 상관없이 음악 안에서 자기를 표현하여 자아를 실현할 수 있다는 음악아(音樂兒)를 모든 아동이 가지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렇게 장애 아동교육은 비장애아이들을 가르치며 경험할 수 없는 폭넓고 풍부한 교육적 경험을 통해 아이들과 반 뼘씩, 한 뼘씩 성장해 나갔다. 만약 장애아동들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는 지금 꼰대 같은 동네 피아노 선생님이 되어 있었을 런지 모르겠다.
장애아동을 가르치는 일이 처음에는 낯설고 답답했지만 이제는 나를 설레게 하는 일이 되었다. 끊임없이 나를 성장시켜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설렘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나는 행복한 교사다. 앞으로 어떤 면에서 나를 성장시켜 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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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을 가지고 학교에 출근한 첫날 교육현장은 설렘을 느끼게 해주는 일보다 낯설음과 예상치 못한 상황들로 가득했다.
설렘이 낯설음으로
"선생님! 아카시아 꽃 따드릴까요? 씹어 먹으면 달디 달아요."
"어? 꽃을 따먹는구나. 선생님은 괜찮아." ^^;;
꽃을 따먹는 이야기는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에 있었던 이야기인줄로만 알았는데,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나무를 타고 올라가 꽃의 단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마치 50년전 흑백 TV속에 와있는 듯 한 느낌이었다.
아이들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예쁘기도 했지만 낯설기도 했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큰 낯설음을 줬던 것은 장애아동 두명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발달장애아동1명, 인공와우를 끼고 있는 청각장애아동1명.
시골 학교에 피아노 교사로 왔는데 장애아동을 가르쳐야 함에 황망한 마음을 감출 도리가 없었다.
다른 장애에 대해 무지했던 나는 장애 아이들이 오면 피아노를 어떻게 알려줘야 할지 막막하고 속이 답답했다. 그렇다고 억지로 떠먹인다고 될 일도 아니었다. 사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느리고 시간이 오래 걸리니 그냥 '시간이나 때우자' 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하고 단념해버리는 부끄러운 교사가 되고 싶진 않았다.
말랑말랑해진 마음
할아버지랑 살고 있는 발달장애아이의 나이는 12살이었지만 1학년 아이와 함께 수업을 받았다. 그 아이의 큰 강점은 음악을 매우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동요를 굉장히 좋아했던 아이는 아무건반이나 두들기며 노래를 불렀다. 아이가 피아노를 치고 나면 건반에 침이 흥건했다. 아이가 점점 싫어지는 마음이 커져갔다.
그때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장애아동 피아노 교육과 관련된 서적이나 영상을 찾기도 어려웠다. 주변지인들이 죄다 음악만 공부하는 사람들이어서 누구에게도 장애아동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피아노를 가르치기보다 아이 자체를 먼저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의 특성과 패턴을 알게 되었다.
"선생니~~임! 근지루와요 ." (간지러워요)
어디서 배웠는지 등이 간지러우면 피아노 모서리에 등을 연신 긁어댔다.
"선생니~~임! 시끄루와요. (시끄러워요)
방음 칸막이가 없던 피아노교실의 피아노 소리가 동시에 흘러나오면 양쪽 귀를 막고 서성였다.
"하네(할아버지)한테“~~
피아노를 치기 싫어할 땐 울면서 꼭 할아버지를 찾았다.
아이의 이런 행동은 너무 귀여웠다.
줄줄 흘러내리는 아이의 침이 신경 쓰이기보다 붙여놓은 것 마냥 길고 가느다란 속눈썹이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가짜 주사기를 보면 겁을 내며 눈물을 흘리던 아이의 순수함이 그렇게 맑고 천진난만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아이와 함께 하며 마음은 말랑말랑해져갔다. 아이에 대한 마음이 바뀌니 피아노를 더 잘 가르쳐 주고 싶은 열의가 생겼다.
시골학교는 한 학기에 한 번씩 부모님을 모셔놓고 발표회를 한다. 이 아이가 단 한곡이라도 완성시켜 연주하도록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모차르트의 <작은별> 멜로디를 가르쳤다.
음악이 준 특별한 행복
도-도-솔-솔-라-라-솔--
파-파-미-미-레-레-도--
아이는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검지손가락만으로 건반을 연신 눌러댔다. 가르친 적이 없는 노래까지 흥얼거리면서.
연주가 끝난 후 학부모들의 경탄하는 소리와 뜨거운 박수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렇게 행복해하는 아이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 멜로디를 연주하기 위해 2개월을 노력했다. 느리고 틀리고 떼 부리는 과정들이 있었지만, 아이는 결국 해냈다.
연주곡의 수준과 연주 방법이 어떠하든, 누군가 앞에서 연주를 하고 박수와 환호를 받는 것은 이 아이에게는 특별하고도 행복한 경험 이었을 것이다.
아이의 경험은 교사인 나에게도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13년 전 그 아이의 행복한 표정은 지금껏 내가 장애아동음악교육을 하도록 만들어 준 첫 단추이자 원동력이 되었다.
나를 성장하게 해준 제자들
중국 오경(五經)의 하나인 《예기(禮記)의〈학기(學記)〉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교학상장(敎學相長). '스승이 가르치고 제자가 배우면서 서로를 진보시켜준다' 는 말이다. 난 이 말에 깊이 공감한다.
장애 아동과의 만남은 교육가로서 지금의 나를 성장하게 해줬다. 우선 음악을 어떤 방식으로 접근 할 것인지에 대한 풍부한 음악적 이론과 노하우를 갖게 해 주었다. 분명 그들의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색다른 접근과 시각은 매너리즘(신선미와 독창성을 잃는 일)에 빠지지 않게 해 주었다.
장애아동을 가르치는 일은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알게 해주었다. 마음을 열고 소통한다는 것이 어려운 부면도 있지만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고 단순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장애나 문제와 상관없이 음악 안에서 자기를 표현하여 자아를 실현할 수 있다는 음악아(音樂兒)를 모든 아동이 가지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렇게 장애 아동교육은 비장애아이들을 가르치며 경험할 수 없는 폭넓고 풍부한 교육적 경험을 통해 아이들과 반 뼘씩, 한 뼘씩 성장해 나갔다. 만약 장애아동들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는 지금 꼰대 같은 동네 피아노 선생님이 되어 있었을 런지 모르겠다.
장애아동을 가르치는 일이 처음에는 낯설고 답답했지만 이제는 나를 설레게 하는 일이 되었다. 끊임없이 나를 성장시켜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설렘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나는 행복한 교사다. 앞으로 어떤 면에서 나를 성장시켜 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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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강대유 (piano-yo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