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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우리들의 아팠던 시간, 장애와 화해하기
    작성일
    2018-06-18 14:39

    극단 「애인」의 ‘한달이랑 방에서 나오기만 해’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8-06-18 11:53:39
    공연 포스터 ⓒ극단「애인」에이블포토로 보기 공연 포스터 ⓒ극단「애인」
    5월의 대학로는 적어도 나에겐 그 옛날 로망이었다. 

    젊음이 가득한 거리라는데, 낭만이 넘치는 거리라는데, 예술과 자유의 혼이 곳곳에 스민 거리라는데... 나는 갈 수 없던 곳이니 갈 수 없는 곳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한껏 나를 설레게 하던 그곳. 이젠 동경이 아닌 현실이 된 그곳에서 자유롭고 달콤한 바람을 마시노라면 불현 듯 그 바람은 지난 시간의 기억을 불어다 주곤 한다. 

    지난 5월 대학로에서 극단「애인」의 공연 ‘한달이랑 방에서 나오기만 해’가 그런 기억의 바람을 온 가슴으로 맞게 해주었다. 

    비록 23일부터 26일까지의 짧은 공연이었지만 극단「애인」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지난 시간들을 만나는 공감과 치유, 그리고 화해의 바람이 되어 주었다. 

    그 바람의 기억을 이제야 여기 ‘쓱’ 풀어 놓다니 많이 아쉽고 송구하지만 좋은 작품은 묵혔다 꺼내도 여전히 좋을 테니까...!

    한달이랑 방에서 나오기만 해...? 바로 ‘한달이랑’과 ‘방에서 나오기만 해’, 두 편의 연극 제목을 이어놓은 제목이다. ‘한달이랑’은 시설에서 자립한, 장애를 가진 세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문 앞에 버려진 아기와 함께 살면서 겪는 이야기다. 

    한 마디로 장애인판 ‘세 남자와 아기 바구니’ 정도가 되겠다. 그리고 ‘방에서 나오기만 해’는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장애를 가진 딸과 그 딸의 장애 때문에 스스로 고통스러웠던 엄마와의 애증과 화해를 그렸다. 

    우선, 첫 무대를 장식한 장애인 판 ‘세 남자와 아기 바구니’가 그렇게 재미있을 줄 몰랐다. 그동안 비장애인 세 남성이 아기 키우는 설정의 영화나 드라마는 많았지만 장애를 가진 세 남성이 아이를 키운다구...? 별로 상상해 본 적 없는 이야기였던 터라 더 호기심 있게 지켜 봤는지도 모르겠다. 

    '한달이랑' 세 남자 ⓒ극단「애인」 제공에이블포토로 보기 '한달이랑' 세 남자 ⓒ극단「애인」 제공
    “와! 미쳤다. 어떻게 장애인들만 사는 집에 애기를 맡기냐!” 
    아기를 받아 안고 이렇게 말하는 대목에서 그야말로 빵 터졌다. 그 난감한 상황에서 좌충우돌 그들만의 육아생활이 시작된다. 팔과 손의 장애로 아기를 안을 수 없는 사람은 그나마 걸을 수 있으니 주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두 남자의 필요를 채운다.

    아이를 안을 수 있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아이를 안고 우유를 먹이며 기저귀를 갈아주는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은 육아에 필요한 정보를 재빠르게 검색해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주어진 상황 안에서 셋만의 완벽한 호흡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안에 장애인만의 몸짓, 장애인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무엇보다 극단 「애인」이 공연 때마다 보여주는 가장 큰 미덕은 무대에 선 이들이 장애를 가진 배우임을 잊지 않게 한다는 점이다. 비장애인처럼 최대한 자연스럽게, 비장애인처럼 민첩하게, 비장애인처럼 분명한 발음으로... 그렇게 비장애인처럼 흉내내기가 아니라 각자 자신의 장애를 꾸밈없이 드러내며 가장 자기다운 연기를 보여준다. 

    배우들은 우리가 늘 익숙하게 봐 오던 비장애인들의 일상과 확연히 다른 속도로 느리게 아이를 안고, 느리게 우유병을 가지고 오며 느리게 검색을 하고 느리게 말을 한다. 

    아무것도 자기 아닌 척 가장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자신의 몸짓으로 연기한다. 그걸 지켜보는 관객들은 그들을 통해 나와 다른 몸짓, 나와 다른 이들을 지켜본다.

    일반적으로 비장애인들의 연극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그들만의 몸짓과 속도로 오롯이 자신의 장애를 드러내 놓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데 보는 사람도 어느새 그것에 익숙해진다. 

    그들의 속도에 동화되고 나와 또 다른 장애의 몸짓이 낯설지 않게 되며, 심지어 장애가 매력적인 개성이 되는 장을 그들의 무대를 통해 경험하는 것이다.

    세 남자는 한 달 동안 맡겨진 아기를 기르는 동안 자신의 아픈 과거를 만나고 상처를 드러내고 한 생명에 쏟아붓는 사랑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해 간다. 

    극 중 현철이 아기에게 ‘너는 커서 장애인은 되지 마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진수가 말한다. “괜찮아, 한달아, 나처럼 멋진 장애인도 많단다” 그 말에 누구도 냉소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상처를 서로가 가진 힘(치유력)의 상호작용을 통해 아기가 자라듯 그들도 어느새 성장해 가고 있는 것이다. 

    ‘방에서 나오기만 해’ 진주 모녀 ⓒ 극단「애인」에이블포토로 보기 ‘방에서 나오기만 해’ 진주 모녀 ⓒ 극단「애인」
    두 번째 무대인 ‘방에서 나오기만 해’의 주인공 진주를 통해서는 많은 관객들이 자신의 상처와도 만나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딸의 장애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엄마, 그래서 더욱 딸에게 집요하게 완벽을 요구했던 엄마 때문에 진주는 학창시절 내내 방 밖을 나설 수 없었고 엄마를 향한 애증으로 힘겨워한다. 

    그게 어디 진주만의 모습이겠나. 우리 모두에게도 그런 각자의 방이 있었다. 타인의 강요였든 자신만의 특별한 상처였든 우린 저마다 각자의 방에 몰래 스스로를 숨기고 아픈 시간을 건너왔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우리를 그 아픈 시간 안에 붙들려 있게 하고 스스로의 방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는가. 진주는 엄마를 새롭게 대면하면서 그 방의 출구를 찾았다. 

    엄마와 함께 겪었던 그 고통의 시간이 엄마에게도 머릿속을 하얗게 지울 만큼 지독한 독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나를 아프게 하고 상처 주는 엄마, 딸을 부끄러워하는 무정한 엄마가 아니라 엄마 역시 진주처럼 아프고 위로가 필요했던 나약한 한 사람이었음을 어린아이가 되어 버린 엄마를 통해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삶이란 자신을 망치는 것과 싸우는 일이다
    망가지지 않기 위해 일을 한다 
    지상에서 남은 나날을 사랑하기 위해 
    외로움이 지나쳐 
    괴로움이 되는 모든 것 
    마음을 폐가로 만드는 모든 것과 싸운다 

    극 중 진주가 읊조리는 신현림의 이 시를 들으며 결국 우리는 모두 그렇게 치열한 삶의 전장에서 자신을 망치는 적들과 처절하게 피 흘려 싸워야만 하는 가여운 존재들임을 가만히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진주고 엄마는 내 엄마지"... 진주의 이 쓸쓸하면서도 담담한 독백을 통해 그녀는 비로소 지난 시간과 화해한다. 이제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직면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해졌다. 그것을 우리는 ‘성장’이라 부른다.

    공연을 마치고 ⓒ 극단「애인」에이블포토로 보기 공연을 마치고 ⓒ 극단「애인」
    진주는 왜 진주일까? 조가비의 속살에 파고든 상처가 어느덧 자라 진주가 된다는... 바로 그런 의미의 진주인가? 또 왜 하필 ‘아기를 키우는’ 설정인가? 

    생명을 돌보고 자라게 하는 그 고단한 과정을 통해 결국 아기뿐만 아니라 키우는 이도 성장하는 것임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나 하는 생각에 문득 이른다. 그런 치유와 화해의 이야기, 성장의 이야기가 5월 거기에 있었다.

    장애는 장애라고 여길 때 장애가 된다!
    매공연마다 극단「애인」에게서 듣는 숨은 메시지다. 가장 자기다운 몸짓으로 전하는 그들의 뜨거운 선언. 극단 「애인」의 공연을 매번 새롭게 기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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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니스트 차미경 (myrodem100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