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예술인 인터뷰, 소리꾼 김지연의 성장과 꿈 > 복지정보 | 성민복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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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예술인 인터뷰, 소리꾼 김지연의 성장과 꿈
    작성일
    2024-06-05 14:30

    김지연은 1995년 7개월 만에 미숙아로 태어났다. 둘째 아기여서 출산의 경험이 있었던 엄마는 순조롭게 임산부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모르게 아기는 일찍 세상에 나왔다.


    너무나 작은 신생아라서 엄마가 안아 보지도 못하고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다.


    1995년 당시는 인큐베이터가 안전하지 않았다. 그래서 인큐베이터 안에서 시력을 잃는, 지금으로 말하면 의료사고가 종종 일어났다.


    인큐베이터 안에서 아기는 빛을 잃었지만 엄마는 그것을 그저 미숙아여서 눈의 기능이 완전 해지지 않은 상태로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한 번도 빛을 보지 못했던 지연은 성격이 활발하여 구김 없이 성장하였다. 이것저것 관심을 보이기는 했지만 특별히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지 못한 채 5세 때부터 서울맹학교 유치부에 다녔다.


    서편제가 만들어 준 꿈

    학창 시절에는 국사 시간이 제일 흥미로웠다. 우리나라 역사가 너무 재미있어 자기도 국사 선생님처럼 국사 과목 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역사 관련 책을 많이 읽었는데 중학교 3학년 때 우연히 점자책으로 나온 「서편제」를 읽고 여주인공 송화의 한과 기쁨이 마치 자신의 운명처럼 다가왔다.


    ‘어쩌면 송화가 걸어온 소리 길을 나도 걸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막연하지만 설레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영화 <서편제>를 감상하고는 그 꿈을 실현하기로 결심했다.


    마침 서울맹학교에 시각중복장애인을 위한 설리번학습지원센터에서 방과후 프로그램으로 청소년반을 운영하였는데 그곳에서 국악 담당 원진주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 원 선생은 40세, 김지연은 18세였다. 지연은 원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 판소리에 푹 빠졌다. 동영상으로 듣고 흉내를 내었을 때와는 달리 진짜 판소리는 온몸을 진동시켰다.


    그녀는 부모님께 판소리로 대학에 가겠다고 선언하였다. 하지만 부모님은 판소리는 몇년 배워서 익히는 것이 아니고 지금 배워서는 대학에 갈 수 없다고 딸을 말렸다. 시각장애가 있는 딸이 판소리를 전공하여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딸의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 더욱 반대하였다.


    지연은 피아노를 배우다가도 그만두고 바이올린 배우다가도 그만두고, 성악도 배우다 말고 그랬던 딸이라서 판소리도 하다가 그만둘 텐데 시작도 하지 말라고 엄마는 단호하게 말했다.


    지연도 자신의 단점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판소리는 끝까지 놓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판소리에서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를 설득하기 위해 지연은 처음으로 엄마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다. 물론 하얀 종이에 6개의 점을 찍어서 점자로 쓴 편지였다.


    엄마는 딸의 교육을 위해 딸보다 먼저 점자를 읽혔기 때문에 엄마는 점자 편지를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읽으며 딸의 진심과 열정을 느낄 수 있었기에 지연의 소원을 들어주게 되었다.


    판소리를 배우다

    엄마가 결심을 하는데 원 선생님의 도움이 컸다.


    “흰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이 가르치면 가르친 만큼잘 따라와요. 무엇보다 판소리를 알아 가면서 지연이가 너무나 행복해해요. 지연이를 통해 저도 그동안 몰랐던 판소리의 기쁨을 느끼고 있어요. 제가 잘 가르치겠습니다.”


    지연은 본격적으로 판소리 공부를 하면서 소리의 눈을 떴다. 하지만 판소리는 창(소리)과 아니리(독백)로 구성되어 있어서 소리만 익힌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바로 판소 리의 ‘너름새’와 ‘발림’이라 불리는 판소리의 동작이었다. 너름새는 연기이고 발림은 부채를 사용하는 동작이다. 판소리는 긴 이야기를 동작과 함께 풀어내야 하는 종합예술이기에 태어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다양한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표정으로 몸짓으로 연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스승은 방향감각이 거의 없는 제자를 위해 자신의 얼굴을 제자가 손으로 더듬으며 혀의 위치, 입술 모양 등 다양한 표정과 몸짓 하나하나를 감각으로 기억하게 했다. 부채 하나를 들고 접고 펴기를 수백 번 반복하 였다. 미세한 얼굴 방향, 어깨 올림까지도 수천 번의 교정과 연습을 통해 소리와 발림의 태산을 스승과 제자는 함께 올라 가고 있었다.


    이런 노력 끝에 지연은 2014 년 수원대학교 국악과에 입학 하였다. 그리고 스승도 2013년 임방울국악제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판소리 명창 반열에 올랐다. 명창대회에서 몇 번의 낙방의 경험으로 좌절하던 스승은 지연을 가르치면서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강한 의지를 배우게 되었기에 서로에게 큰 힘이 되었다.


    소리꾼으로 성장하면서

    지연은 판소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판소리 대회에 나갔다. 심사평으로 소리는 좋은데 발림 즉 부채 놀림이 어색하다는 지적을 들었다. 그 지적이 약이 되어 수백 번 훈련을 거듭 하자 나중에는 발림도 많이 좋아졌다는 칭찬을 받았다.


    대회에 나가면 지정 고수가 있는데 서로 눈빛으로 사인을 보내지 못해 걱정이 되었지만 고수들이 입 모양과 호흡을 듣고 장단을 맞춰 주었다. 대회를 마치고 고수분에게 인사를 하면 고수들은 하나같이 지연이 잘하기 때문에 시각장애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편하게 할 수 있었다고 오히려 고마워하였다.


    김지연은 2016년 대한민국장애인예술경연대회에서 국악 부문 금상을 받으며 장애인예술계에 등장하였고, 2021년에 2시간 30분 동안 <흥보가>를 완창하여 소리꾼으로서의 성장을 보여 주었다. 2023년 제 1회 세계판소리페스티벌 에서 20시간 릴레이 공연 에도 참여하는 등 다양한 공연활동을 하고 있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소리꾼 이다.


    대학 새내기 시절 국악과 모든 학생들이 참여하는 공연이 있다고 하여 지연도 자기 나름대로 공연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특별한 이유도 없이 지연이 빠지는 일이 발생하여 상처를 받기도 하였지만 서운한 티 내지 않고 씩씩하게 실력을 쌓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학교 근처에 방을 얻어 엄마와 자취를 하면서 등하교를 했던 지연은 자신을 믿고 소리의 길을 걷게 해 준 엄마를 위해서라도 더욱더 노력해야 했다. 대학 3학년부터 관현맹인전통예술단 예비단원이 되면서 공연활동을 활발히 할 수 있었다. 꿈의 무대인 카네 기홀 공연의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현재는 정단원이 되어 월급을 받고 있어서 가족들에게 덜 미안하다.


    지연이 득음(得音)을 하여 소리꾼으로 국악계에서 우뚝 서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연은 판소리를 작곡하고 싶은 꿈을 갖고 있다. 판소리는 한국의 뮤지컬이기에 판소리는 스토리가 중요한데 사람 들에게 꼭 알리고 싶은 분이 있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의 세종 대왕인 한글 점자를 창안한 송암 박두성 선생의 일대기를 판소리로 창작하여 박두성 선생의 업적을 국내외에 알리고 싶다는 꿈을 오래전부터 가슴에 품고 있었다.


    자신이 창작한 ‘송암 박두성’을 공연하는 상상을 하면서 김지연은 꿈을 다지고 있다.


    김지연

    수원대학교 국악과 졸업

    원진주소리단 동인현 관현맹인전통예술단 정단원

    제11회 대한민국 서봉 판소리 민요대제전 일반부 대상

    제2회 무안전국장애인국악대제전 일반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장상

    2016 11차 ASEM정상회의 개최기념 주 몽골대한민국대사관 초청공연

    2019 뉴욕카네기홀 초청공연 2020 김지연의 흥보가 완창 발표회

    2020 전주세계소리축제 ‘잇다’ 폐막공연 2021 고창동리 판소리 완창전(흥보가)

    2022 카타르월드컵 초청공연

    2023 제1회 세계판소리페스티벌 20시간 릴레이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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