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으로 자신 표현, 장애 구분 필요없다 > 복지정보 | 성민복지관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 확대

    확대

  • 축소

    축소

  • 복지정보

    성민복지관에서 유익한 복지정보를 알려드립니다.

    패션으로 자신 표현, 장애 구분 필요없다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성민복지관
    댓글 0건 조회 4,733회 작성일 20-03-09 15:42

    본문

     

    패션으로 자신 표현, 장애 구분 필요없다

    패션의 거장 이상봉, '장애예술인 대중화' 위해 힘 보태

    美캠페인 명예대사…무대 오르는 일들 자연스러워질 것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0-03-09 11:07:46

    이상봉 명예대사 ⓒ한국장애예술인협회 에이블포토로 보기 이상봉 명예대사 ⓒ한국장애예술인협회
    Q.장애인예술 대중화를 위한 한국장애예술인협회의 美캠페인 명예대사를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안을 받고 결정하시는데 망설이지 않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전혀 망설이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클론의 강원래 씨와 가깝게 지내고 있다. 강원래 씨가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병원에 달려갔다. 당시는 생명이 위험한 상태라서 그가 살아나기만을 기도했다. 그래서 그가 휠체어를 타고 있는 것이 불행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기쁨이 더 컸다.

    강원래 씨가 척수마비로 다리에 감각이 없는데 발가락이 간지럽다고 장난스럽게 웃을 때 깨달았다. 사람들은 장애를 갖게 되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고 생각하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25년 전 인천에 있는 맹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일반 학교와는 달리 학생들이 이동을 할 때 노란색 점자블록을 따라 걷는 것을 보았다. 도서관에 들어가자 학생이 책을 읽고 있었는데 하얀 종이에 점이 찍혀 있어 나는 읽을 수가 없었다. 내가 모르는 세상을 보며 좀 더 알아 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이후 점자 명함을 사용한다.

    (이상봉 선생님이 주신 명함에서 점자를 보니 너무 멋진 디자인으로 느껴졌다. 명함의 크기는 일반 명함과 같은데 봉투 모양이었다. 흔히 뭐가 들었나 하고 봉투 안을 들여다보는데 그 안에 ‘행복하세요’라는 문구가 나온다. 선생님은 단순히 명함을 준 것이 아니라 행복의 소망을 선물한 것이다.)

    Q. 패션디자이너의 꿈은 언제, 어떻게 갖게 되셨습니까.

    내가 좋아하는 단어가 ‘꿈’이다. 꿈은 바뀐다. 초등학교 때 꿈은 스님이었다. 할머니를 따라 절에 하면 모든 사람들이 스님에게 두 손을 모아 공손히 절을 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는 화가, 고등학교 때는 작가, 대학교 때는 연극배우가 꿈이었다. 대학 졸업 후에 패션디자이너가 되었다. 꿈이 바뀌는 것이 성장 과정이다. 연극 공연 연습을 하고 밤늦게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에 수선집이 있었다. 재봉틀 앞에서 늦은 시간인데도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고 옷을 만드는 일도 참 중요한 작업이란 생각이 들었다. 패션디자이너라기보다 옷 만드는 일에 대한 관심이 그때 그렇게 생겼다.

    Q. 원장님은 패션으로 세계적 인물이 되셨는데 그런 인정을 받기까지의 과정이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남다른 노력이 필요했을 텐데.

    공연을 앞두고 배우가 종적을 감추는 것은 대형 사고인데 내가 그 사고를 쳤다. 연기자로서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와서 열심히 연습했는데 갑자기 이 길이 나의 길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집안의 외아들이라 내가 가장 역할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는데 연극한다고 가족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공연을 앞두고 도망을 갔다. 연출가 선생님에게 너무나 큰 죄를 지은 미안함이 평생 따라다녔다. KBS-TV의 사람을 찾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그 연출가 선생님을 찾아 사과를 하였다.

    그때는 가족을 위해 연극을 포기했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때 이후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해도 절대로 도망치지 않는다. 기성복 의류회사에 취업하여 일했는데 그것이 가장 큰 공부가 되었다. 1985년 집을 담보로 2000만 원을 융자받아 이상봉 브랜드로 옷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Q. 한글로 디자인하여 한글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셨다. 한글이 갖고 있는 장점은.

    세계적 패션쇼에 참여할 때는 한국적인 디자인을 해야 한다는 것이 내 소신이다. 패션은 나라를 알리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다. 그래서 한글로 디자인을 하였다. 한글은 세계가 인정해 주는 문자인데 그것을 알릴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2006년 세계 패션을 주도하고 있는 파리 패션쇼 준비를 하면서 한글 디자인 패션을 준비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디자이너는 문화를 알리는 역할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K-패션이 세계적인 패션이 되고 있어서 뿌듯하다. 패션은 노동력이 많이 투입되기에 일자리를 창출한다. 그래서 패션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 그래서 국내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베트남, 중국 등으로 열심히 나가고 있다.

    인터뷰 중(방귀희 회장과 이상봉 명예대사) ⓒ한국장애예술인협회 에이블포토로 보기 인터뷰 중(방귀희 회장과 이상봉 명예대사) ⓒ한국장애예술인협회
    Q. 패션쇼를 시민과 함께한다는 발상도 참 참신했다. 흔히 패션쇼는 연예인이나 상류사회 사람들을 위한 행사였는데 서울365패션쇼로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있지 않은가.

    서울365패션쇼는 야외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누구나 함께할 수 있다. 패션쇼 문턱을 낮추어서 모두를 위한 패션쇼로 만들고 싶었다. 패션은 사치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서울365패션쇼를 서울시와 함께 기획해서 지난해 큰 성과를 거두었다. 올해는 서울365패션쇼에 장애예술인들과 함께하는 것을 계획해 보겠다.

    (서울365패션쇼는 지난해 문화비축기지, 노들섬, 북서울 꿈의 숲, 세빛둥둥섬 등 서울시 일대 에서 4월부터 12월까지 펼쳐졌다. 서울365패션쇼는 서울시와 시민들이 함께 만드는 생활밀착형 패션쇼 프로젝트로 서울 시민들에게 매월 다양한 주제의 패션쇼로 365가지 재미와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고 이제 막 패션디자이너와 모델의 꿈을 시작한 이들에게는 데뷔 무대를 지원하여 모두가 즐겁고 행복한 자리를 마련하는 프로젝트이다.)

    Q. 고교패션 콘테스트에는 고등학생 모델이 무대에 오르게 하셨다고. 요즘은 실버 모델 활동이 많은데 장애인 모델도 가능하지 않은가.

    당연하다. 아름다운 패션으로 자신을 표현하는데 장애/비장애 그런 구분이 왜 필요하겠는 가. 고교패션 콘테스트도 처음 시작했을 때는 고등학생이 무슨 패션쇼냐 했지만 지금은 많은 고등학생들이 기다리는 콘테스트가 되었다.

    사단법인 고교패션콘테스트 with이상봉이 만들어져서 사업이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에도 장애인을 위한 패션이 아니라 장애인 모델이 주인공으로 무대에 오르는 일들이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Q. 바쁘신 가운데 가정위탁이나 다문화 어린이들을 위한 활동도 하시어 놀랍다. 사회 지도층이 실천해야 할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원장님의 생각은.

    다문화가정 어린이들은 정말 많은 어려움이 있다. 생김새가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고 있다. 그래서 1년에 한 번씩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마음껏 재능을 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준다. 음악, 미술, 뮤지컬 등의 공연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면서 그동안 받았던 설움을 털어 내는데 너무너무 즐거워한다.

    그리고 가정위탁도 매우 중요하다. 해외로 입양을 보내지 않고 우리 손으로 키워야 한다. 모두가 소중한 우리 아이들인데 우리 가정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가정위탁제도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래서 참여하고 있다.

    명예대사패를 든 이상봉 명예대사 ⓒ한국장애예술인협회 에이블포토로 보기 명예대사패를 든 이상봉 명예대사 ⓒ한국장애예술인협회
    Q. 장애인예술 대중화를 위한 美캠페인 명예대사로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으신지.

    나에게 기회를 주어 고맙게 생각한다. 장애인예술을 이해하고 함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 역할일 것이다. 기성복회사에 다닐 때 목발을 사용하는 여성분과 작업을 했다. 의류업은 옷감이나 옷을 들고 다녀야 하는데 주로 지하에 작업실이 있어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다.

    그분의 짐을 들어주려 하자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정말 힘든 것은 이 보따리 무게가 아니라 자신을 다르게 보는 동정이라고 해서 무척 무안했던 적이 있었다. 장애인들이 원하는 것은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함께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칼럼/한국장애예술인협회 (klah1990@hanmail.net)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