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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예술인 일자리에도 관심 가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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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성민복지관
    댓글 0건 조회 5,816회 작성일 19-04-10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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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조종란 이사장 강조

    기회 주어진 것은 해야 할 역할 있기 때문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9-04-09 11:23:09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조종란 이사장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에이블포토로 보기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조종란 이사장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연초에 장애인공무원에 대해 2019년도에 의무고용율 3.4%에 미달하는 기관은 채용인원을 늘려 고용률을 채우도록 한다고 발표했는데 양적 확대도 필요하지만 질적 향상이 우선되어야 한다. 희망보직, 승진 등에서 차별받고 있다. 특히 장애인 업무가 있는 부서에도 장애인공무원이 없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Q: 장애인문화예술 업무를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예술정책과에도 장애인공무원이 없다.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공무원제도가 장애인에게 문호가 열린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고위직까지 승진한 사례를 찾기 힘든 부분이 있다. 장애인공무원은 보통은 9급이고 7, 6급도 있지만 10급부터 시작하기도 하다 보니 진급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다만 장애인공무원 배치에 문제가 있는 것은 속히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정부는 중증장애인의 공무원 진출 확대를 위해 정원 외 선발이 가능하도록 지침을 개정했다. 공단은 공무원을 꿈꾸는 장애인을 위해 공직설명회, 맞춤형 공무원 면접 컨설팅 등을 지원하고 있다.

    Q: 24년 동안 공단에 근무하며 내공을 쌓은 전문가이기 때문에 공단 이사장 선임에 토를 다는 사람이 없었다. 일반 직원으로 입사해서 이사장까지, 여성장애인으로 유리천장을 잘 뚫었는데 그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

    우선 공단에서 근무한 경력과 그 안에 쌓은 경험이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는 가장 큰 동력이었다. 공단 역사의 크고 작은 고비를 함께해 준 동료, 선배와 후배 직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뒤돌아보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적인 도전을 하며 살았다.

    1999년 인사개혁조치로 도입한 내부직위공모제에 도전하여 2010년 부장 직급으로 고용지원국장에 임명되었다. 1급 보직에 2급 직원이 임용된 것은 1990년 공단 설립 이래 처음인 파격적 인사였다. 당시 49세였다.

    그렇게 도전하지 않았으면 만년 부장에 멈춰 있었을 것이다. 여성 특히 장애인은 어느 정도 올라가면 유리천장에 막혀 멈추게 된다. 나도 승진에서 번번이 누락되었었다. 얼마 후, 고용 촉진이사 공모에 도전하겠다고 하자 주위에서 만류하였다. 떨어지면 바로 옷 벗고 나가야 할 텐데 그냥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이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업무에 더 큰 역할을 하기 위한 도전이라면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공단 고용 촉진이사에 도전하여 선택을 받았고 임기 외 1년 연장까지 되어 3년 동안 근무했다.

    그 후 공단을 떠나 성민복지관 관장으로 4년간 근무했는데 그 시기는 외부에서 공단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2017년 말 공단 이사장 공모에 또다시 도전하여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되었다.

    기능대회와 협약식에서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에이블포토로 보기 기능대회와 협약식에서 ⓒ한국장애인고용공단
    Q: 공단 근무를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내가 공단에서 일하던 20대에 상담을 거쳐 취업을 알선한 발달장애인 남성이 있다. 매우긴 상담을 한 끝에 제조업 분야로 취업을 시켰다. 세월이 한참 흘러 공단을 떠나 성민복지관 관장으로 일할 때였다. 한 행사장에서 아주 우연하게 그때 내가 취업을 시킨 발달장애인의 어머니께서 나를 알아보시고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이미 노인이 된 노모가 아직도 내가 직접 취업 알선을 해 주었던 그 회사에 근속하고 있는 아들을 데리고 복지관으로 찾아왔다. 감동과 감사함으로 가슴이 뭉클했다. 지금도 노모의 주름과 이미 중년에 접어든 발달장애인 분의 얼굴이 떠오르면 설명하기 힘든 기쁨이 찾아온다.

    Q: 전공이 사회복지인데 학과 선택에 장애가 영향을 미쳤는지.

    언니 친구 가운데 특수교육을 전공하여 특수학교 교사가 된 분이 있어서 장애인 관련 전공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미 중학교 때부터 대학 전공을 사회복지로 정했다. 사회복지학과 공부는 도전해 볼 만하다고 생각되었고 ‘졸업 후 취업이 어렵지는 않겠지.’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Q: 사회복지계에서도 근무를 한 것으로 아는데.

    대학에 들어갔을 때 장애인의 현실을 깨달았다. 친구들은 4학년 때 취업이 되었다. 교수님이 연결시켜 주는 것인데, 이상하게 나한테는 취업에 대해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우연히 라디오 방송에서 장애인 취업상담을 하는 곳이 있다는 것을 듣고 즉시 찾아갔다.

    상담 결과 장애인은 전문직에 취업하기 어렵고 단순직밖에 취업이 안 된다면서 생산직에 취업을 원하면 연결시켜 주겠다고 하였다. 상담을 마치고 나왔는데 눈물이 비 오듯이 쏟아져서 엘리베이터를 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계단으로 내려오며 계속 울었다. 울면서 다짐했다. 바로 이곳에 취직을 하리라고. 당시 교수님께서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었는데 내가 논문 자료수집 등의 일을 도와드렸다. 논문이 끝나자 교수님이 수고에 대한 보답으로 선물을 사 주겠다고 하여 관련 단체로 나를 소개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교수님이 직접 나를 데리고 ○○협회로 찾아가 기관의 관리자를 뵙게 되었다. 그 후 협회에서 자원봉사를 하게 되었다. 그때가 1986년이다. 자원봉사이지만 매일 출근하였고, 전공을 살려 직원들의 업무를 도왔다. 그때는 사회복지를 전공한 직원이 없어서 내가 도움이 되자 직원들과 서로 잘 지냈다.

    내 책상은 문 앞에 있었는데 협회 사무실이 사회복지협의회 빌딩에 있었기 때문에 ○○○회 장님이 자주 들르셨다. 처음 봤을 때는 상담하러 온 사람인 줄 알았는데 올 때마다 내가 있고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하니까 나에 대해 궁금하셨던 모양이다. 내가 사회복지 전공자이고 자원봉사를 직원처럼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협회 간사 일을 맡기셨다. 작은 돈이지만 내 노동으로 수입이 생긴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거의 1년이 넘게 자원봉사로 일을 했지만 협회에서는 장애인 상담에 장애인 당사자는 객관적인 입장이 될 수 없어 장애인 직원 채용이 어렵다고 하였다.

    TO가 없다는 식으로 말하다가 막상 TO가 생기자 그런 이유로 배제를 하는 것을 보고 장애인을 채용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상처를 많이 받았지만 그만두지 않았다. 이미 직원들과 라포가 형성되어 오히려 직원들이 더 버티자고 위로해 주었다.

    그렇게 실의의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협회에서 복지관을 위탁 운영하게 되었다. 새로 개관이 되어 많은 인원을 채용하게 되었는데 지원서를 냈을 때 합격이 되었다. ○○협회에서 자원봉사로 취업 알선 업무를 했던 것이 큰 자산이 되었다.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Q: 공단에 입사하게 된 계기는.

    복지관에 근무하면서 직업재활파트를 맡았다. 업무를 맡으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직장인의 자세이고 더군다나 장애인 당사자로 장애인의 아픔과 현실을 잘 알고 있기에 장애인을 위해 도움이 되고 싶다는 것은 내 기본적인 마인드라서 마치 내 일처럼 거절당하면 아파하고 해결되면 기뻐하며 일을 했다.

    그렇게 하니 성과가 따랐다. 이렇게 성과를 올릴 무렵 1990년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현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설립되었다. 나는 그동안의 직업재활 경력을 더 전문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공단에 도전하였다. 역시 결과는 좋았다.

    Q: 이렇게 직원으로 입사하여 이사장까지 되셨는데, 누가 가장 좋아했는지.

    가족들 모두 좋아했다. 특히 어머니께서 ‘오래 사니 이런 날을 보는구나.’ 하시며 눈물을 보이셨다. 취업이 안 돼 마음고생을 할 때 어머니 마음은 더 아프셨을 것이다. 어머니가 장애 딸 때문에 감내하셨을 고생을 이해하게 되면서 어머니와 형제들에게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했다. 이제 빚을 좀 갚은 기분이다.

    Q: 국정감사나 국회 업무보고에서 당당히 설명하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런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 인지.

    시작하기 전에는 긴장한다. 장애인 고용정책의 미비점을 지적받을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장애인과 관련된 정책의 나아갈 방향을 알릴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기에 의원들에게 장애인의 입장에서 장애인 관련 정책에 대한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신 있게 답변할 수 있었다.

    Q: 장애인 인식개선 강사에 장애예술인들이 관심이 많다. 강사가 되려면.

    공단에서 실시하는 장애인 인식개선 강사교육은 반드시 수료해야 한다. 장애인 인식개선 강사는 장애인 분들에게 아주 좋은 일자리이다. 앞으로 강사와 장애인오케스트라가 한 팀이 되어 강의를 진행하면 아주 멋진 결과가 있을 것 같다.

    Q: 장애예술인의 일자리에도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한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장애예술인 일자리 확대 방안을 제안해 주어 오히려 감사하다. 장애인 고용의 파이를 키우는 일인데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기업에서 장애인체육 실업팀을 운영하는 것처럼 장애예술인을 팀으로 묶어서 지원하는 방안도 가능하다 본다. 모든 것이 법률로 근거를 마련해야 해서 시간과 노력이 많이 걸리지만 관심을 갖고 꾸준히 접근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

    국정감사와 청와대에서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에이블포토로 보기 국정감사와 청와대에서 ⓒ한국장애인고용공단
    Q: 앞으로 계획은.

    공단에 온 지도 벌써 1년이 넘었다. 임기 동안 하나라도 더해 놓고 가야지 하는 마음뿐이다. 장애인으로서 장애인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은 내가 해야 할 역할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치고 나서 장애인이나 공단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겠다는 신념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현장과 소통하며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이다.

    Q: 새해 장애인 고용 전망은.

    정부가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장기적인 경제성장 둔화와 산업구조의 변화는 단시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이런 현상은 2019년에도 지속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장애인 고용 분야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큰 폭의 장애인 고용률 상승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장애인 의무 고용율이 올해부터는 3.1%로 상향 조정되어 더 많은 장애인을 고용해야 할 의무가 생겼다.

    이는 기업의 장애인 고용에 대한 동기를 부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공단은 이를 기회로 삼아 기업의 장애인 고용을 독려하고 지원할 계획이다.

    Q: 장애인공무원 가운데 80%가 하위직이란 기사를 봤다. 수적인 증가도 중요하지만 질적인 향상이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장애인공무원의 80%가 하위라고 해서 양질의 일자리가 아닌 것은 아니다. 이는 고위직 공무원으로 진출한 장애인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오히려 승진에 있어서의 차별 문제 그리고 장애인공무원의 안정적인 근무여건 조성 문제와 더욱 관련이 있다.

    장애인공무원 채용 확대와 근무지원을 위해 공단은 인사혁신처와 협업체제를 공고히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인사혁신처가 발표한 ‘균형인사지침’에는 관련된 내용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즉, 공직 내 근무하는 공무원을 대상으로 장애인 인식개선교육 실시를 의무화하고, 장애인공무원에 대한 보조공학 및 근로지원 서비스를 확대하기로 했다.

    또한 장애인공무원의 안정적인 근무여건을 조성하고 직무적응을 돕는 전담인력을 고위 공무원 중으로 지정하는 ‘장애인지원관’ 제도를 운영하기로 했다. 장애인의 공직 진출 확대와 안정적인 근속 환경 지원이 전제되어야 고위직 장애인공무원 수도 증가할 수 있을 것이다.

    Q: 장애인공무원 채용계획 및 실시 상황을 체크하는 사업을 공단에서 하게 되었는데 이 사업을 공단에서 실시하면 어떤 점이 좋아지는지 기대가 크다.

    그간 장애인공무원 고용상황은 노동부가 직접 조사했다. 장애인공무원은 고용부가, 민간 부문은 우리 공단이 장애인 의무고용 현황을 조사했는데, 각각 자료수집의 범위가 상이하여 통계의 정확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었다.

    고용노동부의 장애인공무원 고용상황조사에서는 ‘장애인공무원 명부’를 제출받지 않아 장애인공무원 고용률 관련 통계에 대한 신뢰성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제 공단으로 사업이 일원화되면 ‘장애인 의무고용현황’ 통계자료의 정확성, 자료 분석의 신속성과 용이성이 높아질 수 있어 보다 신뢰할 수 있는 통계자료 구축이 가능하다.

    정확한 통계는 서비스의 수요과 공급을 예측하여 관련 정책 수립 및 제도 개선에 반영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Q: 새해 달라지는 고용 정책은.

    2018년도 장애인의무고용률은 국가지자체(공무원) 3.2%, 국가지자체(공무원이 아닌 근로자) 2.9%, 공공기관 3.2%, 민간기업은 2.9%였으나, 2019년도에는 국가지자체(공무원, 공무원이 아닌 근로자)와 공공기관 모두 3.4%, 민간기업은 3.1%로 상향된다.

    또한, 동료 장애인 지원가가 다른 비경제활동 장애인의 취업을 지원하는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사업’이 2019년부터 시범적으로 시행된다. 이 사업은 경제활동을 하지 않거나 실업 상태에 있는 중증장애인의 취업의욕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것으로, 동료상담·자조모임 등의 활동을 통해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장애인들이 고용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Q: 장애인 인식개선 강사 교육에 대하여

    2018년 5월부터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교육’이 성희롱예방교육, 산업안전보건교육, 개인정보보호교육과 함께 4대 법정의무교육으로 지정되었다. 이에 따라 모든 사업주는 연 1회 이상, 1시간 이상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교육’ 강사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공단이 운영하는 강사 양성 과정을 수료해야 한다. 강사 양성 과정은 강사 활동에 필요한 직장 내 장애인 인권과 차별 금지 및 정당한 편의 제공, 장애인 고용 촉진 및 직업재활과 관련된 법과 제도 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모든 과정을 이수하고 정해진 평가를 통과한다면 인식 개선교육 강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공단은 우수한 강사를 확보하기 위해 교육의 질을 높이는 한편, 실제 교육이 장애인 근로자의 고용 안정과 채용 확대라는 본래의 목적에 맞게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 2022년까지 5,000명의 강사를 양성할 계획인데, 장애계와 연계하여 장애인 특별과정을 운영하는 등 많은 장애인 당사자들이 인식개선교육 강사로 활동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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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한국장애예술인협회 (klah19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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