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성장애, 역사는 짧아도 발전은 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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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성장애인이 중심에 서 본적은 없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의 18세 이상 자폐인 인구는 1만명 언저리에 있을뿐더러 자폐성장애의 중심 논리가 셔번트 아니면 치료 이야기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자폐인 자조모임 estas가 영국에 가서야 본격적으로 신경다양성 이론에 대한 논쟁에 대해 자폐성장애인 권리 운동가들이 자신들의 이론으로 채택하는 분위기에 대해 들었을 정도로 신경다양성 논쟁에 대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이제, 저뿐만 아니라 대중적인 인지 제고 활동과 인식 개선활동, 그리고 eatas의 활동으로 점점 자폐성장애는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그 논쟁에 불을 댕길 시점이 되었습니다. 그 불씨는 드디어 나왔습니다. 미국에서 화제가 되었던 화제의 서적, ‘뉴로트라이브’가 한국어로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참고로, 제목을 읽을 때에는 ‘뉴로트라이브’로 읽어야 합니다.
자폐인 사회는 많이 환호했고 언론들도 일제히 호평을 했습니다. 그렇게 저자를 만나기는 어렵지만 번역자와의 대담이 성사되었습니다. 지난 10월 29일, 이룸센터에서 북토크라는 제목으로 간담회가 열렸습니다.
대담에서 언급된 첫 번째 이야기는 자폐성장애라는 정체성의 이름을 부여한 레오 카너의 업적이었습니다. 트랜스젠더의 정체성 형성 과정 이론을 설명하면서 자폐성장애가 이상한 존재가 아닌 어쨌든 존재의 한 이름으로 인정받은 업적에 대한 성과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레오 카너의 발견은 의외의 이야기였다고 합니다. 한 아동에 대한 우연한 제보로 시작되었고, 결국 1943년에 자폐성장애라는 말을 꺼냈습니다. 다만 이 시대에는 아동에 대해서만 자폐성장애가 있는 줄 알았습니다. 당연하겠지만 신경다양성이 있는 줄도 몰랐고요. 그리고 자폐성장애는 선천적이라는 것도 몰랐고요.
한편, 그보다 조금 앞선 시점에 오스트리아의 한스 아스퍼거도 자폐성장애에 대한 발견을 이뤄냈습니다. 특수교육 개념까지 도입하면서 연구를 하던 빈 아동병원의 성과로 자폐성장애의 열쇠를 열었습니다.
한스 아스퍼거의 업적 중 하나는 자폐성장애가 ‘똑같이 다르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였다는 것과 정상과 비정상은 어려움의 정도 수준의 차이, 적절한 지원이 답이라는, 현대 자폐성장애계의 입장을 처음으로 도입한 셈이 되었습니다. 즉, 자폐성장애의 스펙트럼성을 발견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버나드 림랜드는 결정적인 전환에 기여했습니다. 미국 해군 군인이라는 직위도 활용하여 자폐성장애에 대한 새로운 발견에 대한 업적을 쌓아갔습니다. 그리고 1964년에 가서 드디어 자폐성장애에 대한 ‘대중화’의 열쇠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현대의 자폐성장애의 이론적 틀을 다지는 데 성공했습니다. 선천적이고 유전적이라는, 그리고 특수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는 사실이 업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 미국 자폐성장애아동협회를 결성하여 최초의 자폐성장애 단체를 설립한 성과는 있었습니다.
다만 비판받아야 할 점도 있습니다. 교육의 중요성을 말했으면서도 무리한 의학적 치료를 강조한 ‘역사적 과오’가 있었던 것이죠. 또한 백신 부작용설, 환경오염 유발설같은 잘못된 이론, 요즘 말로 ‘가짜뉴스’를 퍼뜨린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월리엄 도노반이 시작한 첫 번째 자폐인 권리선언이 시작되었다는 재밌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 힘입어 루스 설리번의 투쟁으로 장애아동교육법이라는 일종의 특수교육법을 제정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estas가 그래서 영국을 간 것이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영국의 로나 윙의 성과는 대단했습니다. 서고 속에만 있던 아스퍼거의 연구 성과를 화려하게 깨웠습니다. 자폐성장애를 진정한 의미의 양지로 이끌어 낸 성과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폐인 권리 운동의 최전선에 있는 집단 계열인 아스퍼거 증후군 집단의 이름을 부여했습니다.
영화 레인맨의 성과도 인정될만하다고 합니다. 자폐성장애를 대중적인 장애로 인지하게 된 성과가 있었던 것이죠. 최근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 대한제국 말기 의병전쟁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듯이, 자폐성장애를 낯설지 않게 했으니까요.
그리고 로나 윙의 연구 성과로 자폐성 장애 판정이 DSM 기준에 반영되면서 자폐성장애 정체성에 이른 이들도 늘어났다고 합니다. 사실 저도 최초로 자폐성장애를 진단받은 것이 1990년대 초였습니다. 또한 자폐성장애를 특수교육의 틀에 편입시키기도 했습니다.
사실 진실이 여기에 있습니다. 자폐성장애가 증가한 것은 판정 기법의 발전과 인식 개선으로 ‘자폐성장애가 맞음’이라고 결론지어진 사람이 늘었다는 것입니다. 즉, 자폐성장애는 멀리 있지 않음을 알려주게 된 것도 로나 윙의 성과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자폐인의 영웅이라고 말할 수 있는 템플 그랜딘의 성과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현대 자폐성장애의 주요한 사실을 증명해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제, 자폐인은 양지에 드러났고 이러한 성과에서 짐 싱클레어의 투쟁이 곁들여지면서 자폐성장애의 권리운동은 시작했고, 대한민국에서는 2013년에 estas가 생기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시점이 되면서 오스트레일리아의 당사자 주디 싱어는 새로운 자폐인 인권운동의 이념을 제시했습니다. 바로 estas가 영국에서 놀란 그 개념인 ‘신경다양성’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본격적인 투쟁이 시작되었습니다. estas가 초기에 쓰려던 이름은 ‘낯선 대지’였습니다. 그 원어가 바로 자폐인들의 인터넷 공간인 ‘Wrong Planet’, 즉 낯선 행성이었고 estas가 장기적으로 연대할 단체로 오르내리는 자폐자조네트워크를 조직한 아리 니이먼의 활동도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우리 빼고 우리를 논하지 말라’(Nothing about us, Without us) 이었습니다.
자폐인의 부모님들도 이제 생각을 바꿔도 좋습니다. 자폐인 자녀는 유해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유명 연예인의 자녀도 발달장애라고 표현했지만 어쨌든 자폐인일 수 있음은 국내에서도 검증되었습니다.
행복을 찾는 것에 너무 힘들일 필요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폐성장애는 다양하고 새로운 방식의 삶의 시작이었음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이제 자폐인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신경다양성의 깃발을 높이 들고 자신들의 해방을 향해 전진해가기 시작했습니다. 아, 우리 estas도 그런 깃발을 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아직 답안지를 못 썼지만요.
이제 여러분들에게 부탁드립니다. 지켜봐 주세요. 이제 자폐인을 만날 준비를 하십시오. 그리고 손을 잡아주십시오. 그리고 우리는 똑같이 다릅니다. 이것이 ‘뉴로트라이브’가 여러분들에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여담: 그 북토크 과정에서 estas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estas에 대한 답으로 나온 이야기는 대중들에게 자폐성장애와 신경다양성을 알리는 활동이 먼저여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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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장지용 (alvi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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