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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위안부가 아니다" 사진작가 안세홍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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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성민복지관
    댓글 0건 조회 4,507회 작성일 21-03-11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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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위안부가 아니다" 사진작가 안세홍의 이야기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1-03-11 15:11:18
    안세홍 작가.  ⓒ안세홍 에이블포토로 보기 안세홍 작가. ⓒ안세홍
    사진기를 들고 밖으로 나가다

    중학교 사춘기 시절을 잘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사진 덕분이었다. 집에 사진기가 있었는데 주로 모셔 두고 있는 일상적이지 않은, 무슨 기념일에나 꺼내 사용하는 귀한 물건이었다. 그 일상적이지 않은 사진기를 들고 안세홍은 밖으로 나갔다. 주로 풍경을 찍었다. 그러다 우연히 석촌호수에서 서울놀이마당 탈춤 공연을 보고 카메라 렌즈에 담았는데 필름 현상을 해서 보니 너무나 생생했다. 드디어 순간 포착의 예술, 사진의 매력을 발견하였다.

    고등학교 때 전태일 평전을 읽었는데 노동자 전태일을 통해 약자들이 겪고 있는 불평등 문제에 눈을 떴다. 안세홍이 사진과 사회 약자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자신의 장애와 무관하지 않다.

    1971년 강원도에서 태어났는데 내반족 즉 발이 안쪽으로 휘어 있어서 발바닥으로 걷는 것이 아니라 발 옆면으로 걷기 때문에 걸음걸이가 편안해 보이지 않고 본인도 걷는데 힘이 든다. 안세홍은 장애등급 5급 진단을 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밖으로 나다니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사진을 통해 사회와 소통을 하게 되었다.

    대학 진학을 사진학으로 하고 싶었지만 집안의 반대로 물리학과에 진학하였다.
    1989년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학보사 기자로 일했다. 취재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문제를 찾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졸업 후 자연스럽게 1996년‘사회평론 길’이란 잡지사 기자로 나눔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화보 촬영을 하면서 고등학교 시절 전태일의 삶이 일깨워 준 불평등의 문제와는 또 다른 인간적 연민을 느꼈다.

    취재 이후에도 나눔의 집 자원봉사를 3년간 다녔다. 자원봉사라는 것이 특별한 도움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할머니들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었다.

    위로부터 사진전, 취재, 만남.  ⓒ안세홍 에이블포토로 보기 위로부터 사진전, 취재, 만남. ⓒ안세홍
    할머니들의 분노

    할머니들은 반세기가 훨씬 지났는데도 그 당시의 일들을 그대로 기억해 내며 분노로 얼굴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는 할머니들의 분노를 치유해 드리는 일을 함께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우선 그 사실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자원봉사 3년 만에 다시 사진을 촬영하기 시작하였다.

    할머니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자료를 찾아보았더니 생각보다 아주 광범위하게 많은 피해자들이 있었지만 그 어떤 사과도 받지 못하고 그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오롯이 할머니들 개인이 감당하고 있었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할머니들이 계신 곳이면 어디든 찾아갔다.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등 지금까지 25년 동안 약 140명의 피해자들을 만났다. 2018년 평양에 가면서 피해자 8명의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만나지 못했고, 타이완 역시 피해자 수소문을 했으나 성사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일본은 태평양을 공유하고 있는 24여 개국 여자들을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전쟁에 끌어들였다. 일본은 전쟁에 패배했지만 전쟁터에서 성노예 생활을 했던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의 여성들에게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피해 여성들의 나라에서도 전쟁 합의금을 받고 입을 닫아 버렸다.

    저서 "나는 위안부가 아니다". ⓒ안세홍 에이블포토로 보기 저서 "나는 위안부가 아니다". ⓒ안세홍
    안세홍의 다짐

    안 작가는 매번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제 해결의 의지를 다지며, 그분들의 가늠할 수 없는 고통의 깊이를 조금이나마 공감하였다.

    안 작가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의무감이 생겨 카메라 장비를 어깨에 둘러메고 피해자들이 계신 곳을 찾아다니느라 직장 생활도 할 수 없었고, 가정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장애 때문에 먼 길을 걷는 일이 힘들어서 속도도 낼 수 없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동티모르에서 자매가 일본군 성노예로 청춘을 짓밟힌 할머니를 만났는데 언니는 치매로 말을 전혀 하지 않고 웃기만 하셨다. 동생이 그때 얘기를 쭉 해 나가자 갑자기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일본말로‘이치, 니, 산 (하나 둘 셋) ’을 외쳤다. 치매가 와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일본군 성노예 생활이었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에 뜨거운 불덩어리가 치솟아 올랐다.

    끌려감, 감금, 성폭력, 버려짐. 이 모든 것은 70~8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다.

    나라와 나이, 동원 방법과 기간 등의 피해 사례로만 그녀들의 아픔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 미했다. 이 문제는 아시아태평양전쟁으로 야기된 인권문제로 바라봐야 하기에 안세홍은 피해자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는 범아시아적 취재로 성노예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조사를 한 유일한 작가이다.

    전시 오프닝에서. ⓒ안세홍 에이블포토로 보기 전시 오프닝에서. ⓒ안세홍
    "나는 위안부가 아니다" 출간

    안 작가는 그들이 가족과 청춘과 미래를 잃은 과정들을 촘촘하게 기록해 이 중 21명의 이야기를 2019년 7월「나는 위안부가 아니다」라는 책으로 출간했다.

    21명은 한국 4명, 중국 4명, 인도네 시아 5명, 필리핀 4명, 동티모르 4명이며, 이 가운데 8명이 인터뷰 후에 돌아가셨다.

    제목을 이렇게 붙인 것은 위안부라는 단어가 가해자 일본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단어이고, 그분들이 당한 피해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위안부’라는 표현 대신‘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를 사용한다.

    안 작가는 책 출간과 더불어‘일본 국민들이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알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앞으로도 일본 우익의 반대 속에서도 일본 내 전시회와 강연을 이어 갈 것이라고 했다.

    「나는 위안부가 아니 다」의 영어와 일본판 출간도 계획 중이다.

    “일본에서는 아시아 전역에서 이런 피해자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분이 많았어요. 일본 정부가 우경화될수록, 일본이 피해의 역사만 강조하고 국가가 저지른 범죄를 숨기거든요. 하지만 일본 시민들은 스스로 내 전시회를 알리고 관람하러 오더라구요.”

    안세홍은 ‘아시아 각 국가에서도 사진전시회를 열어 피해자들의 삶을 알리겠다.’고 하며, ‘아직도 만나지 못한 피해 할머니들을 찾아서 살아계실 때 피해자들의 삶을 기록하기 위해 현지로 떠날 것’이라며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안세홍이 올 한 해를 뜨겁게 달군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의원(더불어민주당 21대 비례대표) 의혹 사건과 다른 점은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 편에 서서 당사자의 이야기와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전하겠다는 진정성을 갖고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세홍 작가가 스스로 고행의 길을 택한 것은 피해자의 아픔을 누군가가 얘기해 주지 않으면 묻혀 버리고 말기에 같이 공감하고 기억하는 일을 누군가는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E美지』 16호에 소개되었던 사진작가 도로시아 랭은 소아마비로 지체장애가 있었는데 사진 관에서 촬영 보조 일을 하며 퇴근 후 사진기를 들고 거리로 나가 미국 대공황으로 거리로 밀려나온 실업자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신문에 소개하였다. 그리하여 대공황의 실태를 생생하게 알려서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게 만든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는데 안세홍이 바로 한국의 도로시아 랭으로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작품 ⓒ안세홍 에이블포토로 보기 작품 ⓒ안세홍
    안세홍
    # 주요 경력
    2012 겹겹프로젝트 대표, 일본 비주얼저널리스트협회(JVJA) 회원 2007 한국민속연구소 사진분과장

    # 개인전
    2013~2019 「겹겹」 지울 수 없는 흔적으로 한국, 일본에서 10차례 2003~2015 「겹겹」중국에 남겨진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로 한국, 미국, 일본에서 5차례 2011 「魂巫」 영혼을 부르는 몸짓/도쿄 Place M 2010 「해무」 한국의 풍어제/오사카 아센스갤러리

    # 단체전
    2020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타이페이, 타이완현대미술관 KOREAN GUT/헝가리 한국문화원, 폴란드 민속박물관 2019 섬의 노래/제주 4.3 평화공원, East Asia Peace Art Project 이치트리엔날레 2019, 표현의 부자유전 그 후/나고야, 아이치미술관 대한민국 국제사진페스티벌 특별전/서울, 예술의전당 2018 「Trostlose Trostfrauen」/베를린 rk-Galerie 2017 「소리 없는 기억」/제주 4.3 평화재단 2016「지구의 기억」/타마시 평화전 2015 「표현의 부자유전」/도쿄 후루토 갤러리 2014 「전쟁 속의 여성」/대구 사진비엔날레 2012 「앙코르 국제 사진 페스티벌」/캄보디아 시엠립 2010 「해방촌」 골목길/나고야 갤러리푸쉬케 2006 「얼굴의 시간, 시간의 얼굴」/아트스페이스 휴 2003 「눈밖에 나다」 국가인권위원회 주최/인사동 덕원갤러리 1998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3인전/창원 신세계백화점 갤러리

    # 도서
    2020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타이페이, 타이완2020 「나는 위안부가 아니다」, 글항아리 2017 〈自粛社会〉をのりこえる「慰安婦」写真展中止事件と「表現の自由」, 岩波書店 2013 「겹겹-중국에 남겨진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 서해문집 2013 「重重ー中国に残された朝鮮人日本軍`慰安婦`の物語」, 大月書店 2004 「Comfort Women」, 대한민국 여성부 2003 「눈밖에 나다」, 도서출판 휴먼니스트 2002 「중국으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2」, 한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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